암에 걸려 수술한 이후 나에게 힘을 준 사람들

암 진단은 정말 믿기지 않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온갖 고민과 걱정과 불안에 휩싸였고 움츠려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나에게 힘을 주고 위로의 한마디를 건넨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친구의 한마디

제가 암에 걸리고 수술을 받은 후 우울증으로 사람을 피하게 되었는데 그 와중에도 저의 발병 소식을 듣고 저랑 통화를 하기 위해 전화를 해서 친구가 해준 그 한마디가 바로 “사랑한다 친구야” 입니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울컥하는데 정말로 생각보다 힘들고 고통스럽고 미래에 대해 불안했던 시기이기에 막막하기만 했는데 저에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어릴 적 친구의 사랑한다는 그 한마디는 아주 큰 위로로 다가왔습니다.

보통 친구끼리 장난으로도 하기 힘든 말이 사랑한다는 말이 아닐까 싶은데요. 부모님한테도 어색한데 친구끼리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텐데 제 아픔을 온전히 알지는 못하겠지만 수 많은 풍파를 겪어오고 힘든 일을 이겨내 오면서 사람을 위로해 줄 한마디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친구의 마음이 고마웠습니다.

생각보다 제가 너무 심적으로도 힘이 들었기에 그 한마디에 눈물을 흘렸겠지요. 사랑한다는 말이 암에 걸린 친구에게 정말 큰 위로를 줄 수 있는 한마디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아프다면 그 누군가를 위해 전화라도 좋으니 사랑한다고 꼭 진심으로 한마디 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괜스레 전화해서 잘 지내냐는 친구의 안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지 20년이 넘어가도록 한번도 연락도 못하고 지내던 어린 시절의 친구가 제가 아프단 소식을 듣고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술이 취한 목소리로 하는 말이 ” 얘기 들었다. 이제 괜찮나?” 였는데 20년 만에 술을 먹고 전화해서 퉁명스럽게 하는 친구의 한마디였지만 제가 아프다는 것이 마음이 많이 아팠나 봅니다. 그리고 머슥했는지 이어지는 어린 시절 이야기들.. 단지 술이 취한 친구의 술주정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저를 위하는 감정이 느껴져서 웃고만 있었습니다. 왜 모르겠습니까? 수술이 잘되서 다행이지만 혹시나 잘못되면 암이라는 병은 그야말로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하는 큰 병이라는 것을요..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몇 백킬로가 떨어져 있고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그렇게 마치 어제 본 친구 마냥 아무렇지 않게 안부를 묻는 친구의 한마디는 아직도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명절에 다시 모인 친구들

저희 집은 시골이라 명절에나 내려가곤 합니다. 거리가 300킬로가 넘기 때문에 자주 가고 싶어도 평소에는 가기도 부담스러운 거리입니다. 암 수술 후 몸을 어느 정도 회복하고 1년쯤 지난 후 첫 명절에 시골에 내려갔는데 제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들이 저녁에 많이 찾아와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들 괜찮냐는 표정과 안스럽다는 눈빛을 보내더군요. 살이 많이 빠지고 야위었으니 안스러워 보일만도 했겠지요. 제가 워낙 건강했던 사람이라 나 낯선 모습이기도 했을 것 이구요. 그렇게 친구들이 날 보러 와주고 안부를 확인하러 멀리서 오고 하는 모습도 참 고마웠습니다.

이제 괜찮다고 말해주며 친구들을 안심 시켰지만 걱정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참 뭉클했습니다.

 

아버지의 한마디

암 수술을 할 때 쯤에 저는 딸 아이를 낳게 되었고 수술 이후 건강을 회복하고 2살 된 딸 아이를 아버지에게 데리고 가서 자랑을 했었습니다.

“아버지 딸아이인데 정말 예쁩니다. 아버지 손녀입니다.” 라고 한마디를 하자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이 “너도 니 새끼 이쁘제? 나도 내 자식이 그렇다. 몸은 이제 괜찮나?” 라며 한마디를 해주시더군요. 순간 너무 놀랐습니다. 저는 단지 아버지에게 당신 손녀를 자랑했는데 아버지는 손녀가 아니라 당신 자식인 제 건강을 걱정하고 저를 많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돌려서 말씀하셨습니다.

참 무뚝뚝한 경상도 아버지의 전형이신 아버지이지만 자식이 아파서 얼마나 속으로 걱정을 하셨을지 감히 짐작도 되지 않습니다. 못난 자식으로 평생 자식 도리도 못하고 살았지만 그런 자식이라도 아파서 힘들어하는 걸 멀리서 소식으로만 들으셨을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무너지셨을까요?

사랑한다는 표현을 평생 하지 못했고 친구에게 부모님께도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무한하지 않고 언제든 뚝하고 끊어질 수 있는 실오라기 같은 것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그 실이 이어지는 동안에는 친구에게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표현하고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여야 하겠습니다.

 

아내의 눈물

수술실에 들어가던 저를 보내며 펑펑 울던 아내의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누구보다 제 옆에서 제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마음이 부서져 갔을 아내를 생각하면 이 또한 가슴이 저려옵니다.

이제 막 임신 이후 출산을 했던 아내는 저의 암 소식을 듣고 믿지 못할 정도로 부정하였습니다. 덕분에 여러 곳의 병원을 돌아다니며 확인하였지만 결국 암이라는 것이 확인되고 제 옆에서 가장 힘들었을 아내는 평소에 침착함을 잃지 않고 있다가 수술실에 들어가던 제 뒷모습을 보고 어찌나 펑펑 울던지 그 모습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사실 요즘 암이 무슨 큰 병이겠습니까? 그냥 잘라내고 떼어내면 되는 것이겠지만 아무리 그러해도 당사자나 주변 사람들에게는 큰 병이고 충격으로 와 닿습니다. 그런 충격을 나만큼 크게 받았을 아내의 눈물은 그 어떤 위로의 한마디보다 더 감동적으로 와 닿았고 가슴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맺음말

아직도 위가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5년이 지나고 완치 판정을 받더라도 수술 전의 건강을 완전히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옆에서 많이 힘들어하는 분들도 고통을 함께 가져가야 할 것입니다.

주변의 아픈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떤 위로를 해야 할지 고민이신 분들에게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이렇게 경험담을 이야기해봅니다.

인간이 삶의 무게를 지탱하는데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 또한 인간의 관심과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멋진 말도 필요 없고 어려운 표현도 필요 없습니다.

아픈 사람이 있다면 그냥 마음에 있는 그대로 표현해주세요. 걱정 되었다고 사랑한다고. 그 간단한 말이 당신의 그 한마디가 정말 큰 도움과 위로를 주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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